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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1. 본회퍼에 대한 시대적인 조명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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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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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한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철통같았던 나치독일에 항거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치독일의 항복 직전에 교수형을 받아 생을 마쳤다. 그런데 한편 독일의
근대사에서 히틀러인가 본회퍼인가 하는 명제를 놓고서 히틀러에 대한 역사적인
관심사를 능가하고 히틀러의 생각하였던 모든 것을 극복한 금세기의 현자로 인정
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본회퍼에 관하여서 새롭게 이해를 한다고 하는 것
은 무엇인가? 무엇이 새로운 것인가? 단순히 알려지지 아니하였던 숨겨진 사실이
들어났다고 하여서 새로운 것인가? 물론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아니한 사건들을
가지고 재조명 해 본다고 하면 본회퍼를 새로운 각도로 이해하는 일이 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세계사의 축복의 현장 즉 독일의 통일된 당대의 경우를 생각해
본다고 하면 서독의 민족중흥 및 경제부흥과 사회정의 등에서 본회퍼의 사상적인
기틀이 그러한 축복의 역사의 현장을 가능케 한 것은 분명하였다. 바로 이러한
점을 다시 한번 되새겨봄과 동시에 우리나라의 현실을 올바로 일으켜 세우는 일
에 있어서 한 사람의 본회퍼의 존재가 어찌하여서 절실한 것인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바로 지금 이러한 관점에서 디트리히 본회퍼를 재조명해 보고자 하는 것
이다. 그런데 우연한 일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의 안중근과 본회퍼는 세계사의
광장에서 비교가 될만한 역사적인 인물로 여겨진다. 그래서 이 논고의 후반부에
서는 본회퍼와 안중근을 비교해 보았다. 안중근은 어린 시절부터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서 경건한 마음의 훈련을 받은 사람이었고, 뤼순의 형무소에서 사형집행의
날에는 특별히 자신에게 영세를 주고 어린 시절부터 신앙심을 깊이 교육시켜 준
황해도의 교구장 죠세프 빌렘 신부를 뤼순의 형무소로 방문해 줄 것을 부탁하고
그에게 고해성사를 바치면서 역사의식과 애국심의 발로로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
하였으나 천주님에게는 죄를 범한 것으로 생각되어서 이를 반성한다고 하는 고해
성사를 신부님께 바치면서 천주님께 중보기도를 부탁한 이후에 경건한 미사집전
을 마치고 형장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태도 역시 본회퍼와 매우 유사한 죽음에
대한 소신과 마음의 여유를 보였던 것이다. 이 짧은 논고에서 본회퍼와 안중근을
세계사의 광장에서 서로 비교해 보면서 이 글을 마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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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회퍼에 대한 시대적인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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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분한 시위 군중은 일본인 가옥과 학교를 파손하고, 이튿날부터 밤마다 산에서
봉화를 올리고 만세시위를 계속하였다. 4 월 3 일에는 수촌리 주민들이 주동이
되어 우정면과 장안면 면사무소를 부수고 주재소를 불태웠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 경찰은 4 월 15 일 새벽 수촌리를 급습, 민가에 불을 질러
주민들을 학살했다. 후에 이 사건은 '수촌리 학살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러시아의
“피의 일요일”과 한국의 “피의 화요일”은 한가지로 가난하고 무력한 사회의
빈민층의 인권보장과 사회개혁을 부르짖다가 고귀한 생명이 희생된 경우이다.
제국주의 독재하에서 양민들이 학살을 당한 점에서 비록 장소와 때는 달라도
같은 유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러시아의 제국주의와 일본의 제국주의 아래서
항거한 점에서 이 두 사건은 20 세기초엽에 세계사에 등장된 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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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소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나타남은 곧 우리들의 사상과
우리들의 역사적인 소명이었다고 이해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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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죠지 벨 (George Bell) 주교와 디트리히 본회퍼 (Dietrich
Bonhoeff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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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다. 이러한 의미에서 영국의 벨 주교와 본회퍼의 노력에 우리는 감사하지 않
을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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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스웨덴 시그투나(Sigtuna)에서의 벨(Bell) 주교와 본회퍼
(Bonhoeffer) 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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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프라이부르그 메모란둠 (Freiburg Memorandum) “역사의
0시에서 (In der Stunde 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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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는 이러한 9명의 학자들과 정치인들과 함께 프라이부르그의 “본회퍼 서클
(Bonhoeffer Circle)”을 조직하였다. 이들이 수차례 모여서 본회퍼의 기독교윤리사
상과 그의 깊은 신학사상을 근거로 하여서 이른 바 “프라이부르그 메모란둠”을
제창하였다. 여기에는 나치독일이 패망한 이후에 독일의 역사는 0시에서 새 출발
을 해야한다고 하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하여서 1) 기독교적인 정치, 2) 기독교적
인 사회, 3) 기독교적인 경제, 4) 기독교적인 기술개발 그리고 기독교적인 국제관
계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마지막의 국제관계의 내용에는 유대인들에 대한
보상문제가 심각히 거론되어 있다. 발터 오이켄을 비롯한 경제학자들은 이른 바
새로운 경제유형인 “질서자유주의 경제체제 (Ordoliberalism Economics)”라는 것
을 구체화하게 된다. 여기에서 질서라고 하는 것은 벨 주교의 “세계질서”라는 개
념과 본회퍼의 기독교윤리에서 보여진 성서적 입장에서 이해한 “질서”라는 개념
이 서술되면서 새로운 독일정부는 바로 이러한 질서를 통제하면서 “자유경제체
제”를 유지하는 모범된 경제구조를 실현하려는 결단이 프라이부르그 메모란둠에
서 매우 중요한 관건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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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질서자유주의 경제유형 (Ordoliberalism Economic
Patt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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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오이켄과 디트리히 본회퍼는 종전후 서독의 경제구조에 대하여 새로운 국면
을 개척하였다. 그들이 바이마르 공화국과 나치독일에서 뼈저리게 느낀것은 독점
의 현상과 인플레이션이었다. 이는 비기독교적인 경제악마로서 탐욕과 과소비현상
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의 경제악마를 분쇄하기 위하여서 기독교적인 질
서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
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고대 로마시대의 교부 터툴리안은 어느설교에서 다음과 같
이 말했다. "인간이 서로 서로 필요한 만큼만 가지려고 한다면 지구에는 항상 넉넉
한 물자가 있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이라도 욕심을 가진다고 하면 지구의 물자
를 그 한 사람에게 주어도 모자랄 것이다.” 인간의 마음에 탐욕이 들어오면 혼자서
많이 가지려는 독점의식을 가지게 되면서 대재벌그룹에서 협력업체인 중소기업과
공유하지 아니하고 과독점을 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며, 또 돈을 번 부유층이
규모가 없이 즉 무질서하게 돈을 사용하게 되면 사회에서는 인플레이션의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수훈에 보여진 가르침
과 주기도문의 내용에 보여진 천상의 질서가 사회에 투영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이다. 이렇게 하여 본회퍼의 기독교윤리의 개념으로부터 정립된 질서의 의미가
경제구조에 깊이 반영이 되어서 질서자유주의 경제유형이 생겨남과 동시에 복지
사회의 건설은 독점과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수 있는 정부로부터의 관여로 인하여
구현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서 패전한 독일이 동서로 분단이 된 처
지에서 서독의 경제구조는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게 된 것이다. 전후의 서독의
민족중흥, 복지사회건설, 질서자유주의 경제유형 등이 세계만방에 알려지게 되면
서 서독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 걸친 모범적인 성공사례로 오늘날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동서독이 통일이 된 지금에도 독일의 질서자유주
의 경제유형은 가장 빼어난 경제이론으로 정립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
리나라의 경제구조에도 상당한 영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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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본회퍼와 안중근의 경우, 세계사의 심판대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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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등이 그대로 이룩된 것이 그의 복음의 부활이었다. 안중근 역시 31세의 젊
은 나이에 객지에서 교수형을 당하여 생을 마쳤다. 그에게 있어서도 복음의 부활
이 생겨났다. 이는 일본제국의 음침한 그림자가 유라시아 대륙을 덮으려고 하는
역사의 전개를 중단시켰으며 새로운 시작의 동양평화의 역사가 생겨난 것이다.
만일에 이토 히로부미가 그때에 살해되지 아니하였다고 하면 일본의 제국주의의
그릇된 동양평화의 그림자가 유라시아 대륙을 덮을 번 하였다. 우리는 그리스도,
본회퍼, 안중근에게서 이러한 복음의 부활의 역사적인 현상을 보게 된 것이다. 이
지구촌에 2천년전의 복음의 부활이 없었다면 이 세계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20세기에 본회퍼를 통한 복음의 부활이 없었더면 거의 지구촌 전체가 나치독일의
경영체제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또 안중근의 하얼빈에서의 거사가 없었다고 한다
면 동양평화의 복음은 지금은 어떤 향방에 놓여져 있을 것인가? 헤겔은 “세계사
는 세계심판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세계심판이란 적절한 때에 세계사의
현장에서 이룩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세계심판은 로마판도
내에서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에 생겨났다. 그때의 심판이 변함없이 지금까지 존
속해 오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시간의 중앙에 위치하여
서 시간의 전후를 가르는 위치에 있었다. 그것이 그 당시의 세계사의 광장에서
행하여진 세계심판이었다. 그리스도 이전의 역사와 그리스도 이후의 역사는 그때
의 세계심판이었던 십자가에 의하여서 확연해졌다. 그리고 그때의 세계심판이 오
늘날까지 변함없이 존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의 부활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제 본회퍼와 안중근을 통한 세계사의 심판과 복음의 부활은 그리
스도의 복음의 부활과 함께 세계사에서 없어지지 아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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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라인강의 기적과 한강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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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땅에서는 음악연주를 하지 않겠다고 한 유대인 피아니스트 아르투어 루빈슈타
인이 프랑스와 네델란드 등에 와서 연주를 하면서도 독일땅에는 발걸음조차 내어
딛기를 원치 아니하였다. 그러한 유대인들이 한 두명이 아니었다. 패전한 독일인
들은 유대인들의 얼굴을 대할 면목조차 없었다. 그저 “용서하여 주십시요, 우리가
큰 죄를 지었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서 독일의 여성들은 오로지 독일의 복
구사업에 열중하였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때에 어디에선가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의 선율이 들릴락 말락하였다. 세찬 바람소리 뙤약볓 아래에서 피땀을 흘
려가면서 폐허된 들판에 앉아서 망치를 손에 들고 남은 벽돌들을 정성스럽게 다
듬어서 그것으로 무너진 건물들을 다시 지어 일으켜야만 하였다. 한 젊은 유대인
청년이 바이올린을 들고 이러한 독일여인들 사이를 오가면서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여 준 것이었다. 폐허의 작업장 들판은 순간적으로 감동의 눈물
의 바다로 변하였다. 종전후 독일이 복구되고난 이후에 바로 이 유대인 청년 바
이올리니스트는 명예로운 독일국적을 받았다. 바로 이 유대인 젊은 청년이 예후
디 메누힌 (Yehudi Menuhin)이었다. 우리나라의 파독 광부와 파독 간호사들은 패
전한 독일이 한참 복구도중에 있을 때에 서독에서 가장 힘든 어려운 일을 도맡았
던 것이다. 간호사들은 부상해 돌아온 남성들 뿐만 아니라 복구사업에서 사고로
인하여 부상 당한 대다수의 여인들에게 큰 위로와 희망과 보람이 되었던 것이다.
라인강의 기적이 이루어지던 때의 우리나라의 인력이 독일인들과 함께 한 에피소
드는 지금까지도 독일의 근대사에서 잊혀지지 아니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란 무엇인가?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고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고 협동하고 이웃을 자기자신처럼 생각하고 존중하고 사랑하
고 보살피라는 것이 아니었던가? 파독 광부들과 파독 간호사들은 바로 서독의 복
구사업에서 함께 동역하였던 아름다운 세계사의 지워지지 아니하는 성화로 독일
인들의 마음속에 깊이 깊이 각인되었던 것이다. 그때로부터 서독의 라인강의 기
적은 곧바로 한국의 한강의 기적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평화를 이루었으니 어느날
화평케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이
다고 가르쳐주신 주님의 음성이 바로 독일복구의 현장에 함께한 것이다. 라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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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기적과 한강의 기적은 화평케 하는 민족이 한가지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경
우였다. 우리도 가난한 처지에서 한번은 잘 살아 보아야겠다고 하는 결심으로 한
강의 기적을 일구어낸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본회퍼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
헌신과 봉사와 협동과 화평케 하는 노력이 함께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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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본회퍼와 안중근의 세계사적인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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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심판하는 것인가? 이는 역사의 주인공이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세계사를 주관하시는 장본인이 바로 하나님이시고 그 외아들 우리 수 예수 그리
스도인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시간의 중앙인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축에서
그 중앙에 계시는 주님을 섬기는 일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등에 걺어지지 아니하고서는 세계사의 심판대에 나아갈 수
가 없는 것이다. 1919년 3월 1일의 민족적인 “독립선언서”는 다만 한반도에서 생
겨난 그리고 한반도에만 국한된 그러한 선언문이 아니다. 동양평화 나아가서는
세계평화에 이바지 하고자 하는 우렁찬 하나님의 세계사를 통한 음신이다. 본회
퍼와 안중근에게는 서로 공통된 이러한 세계정신이 그들의 마음을 채우고도 넘쳤
던 것이다. 그들의 마음에는 우리나라의 3.1 독립선언서가 세계사의 평화의 이념
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반만년 역사의 권위를 내세워 이것을 선언함이며, 이천만 민중의 정성과 충성을
합하여 이를 선포하고 밝히는 것이며, 민족의 한결 같은 자유발전을 위하여 이를
주장함이며, 인류의 양심의 발로로 인한 세계개조의 큰 기운에 순응하고 함께 나
가기 위하여 이를 제기함이니 이것은 하늘의 명령이며 시대의 대세이며 전 인류
가 함께 존재하고 함께 사는 권한의 정당한 발동이라 하늘아래에 어떤 것이라도
이를 저지하거나 억제치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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릇 얼마이며, 새롭고 예리한 독창성으로써 세계문화의 큰 흐름에 기여하고 일으
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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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합리한 착오상태를 개선하고 바로잡아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올바른 바탕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함이다. 애초에 민족적인 요구로 나타나지 아니한 양국의 병합
의 결과는 결국에는 일방적인 억압으로 이루어진 차별적인 불평등과 통계숫자 상
의 허식아래서 이해가 상반된 양 민족간의 영원히 일치할 수 없는 원한의 도량이
이익은 없이 깊이만 늘어가는 오늘의 실적을 보라! 용맹하고 과감하게 옛 과오를
바로잡고 진정한 이해와 같은 정서에서 기본을 둔 우호적인 새로운 국면을 타개
해 나감이 서로의 원한을 멀리하고 복을 불러드리는 첩경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또 2천만 울분과 원한이 쌓인 국민을 위력으로써 구속함은 다만 동
양의 영구한 평화를 보장하는 이유가 아닐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동양의 안위의
주축인 4억만 중국인의 일본에 대한 두려움과 질시를 갈수록 짙어지게 하여 그
결과로 동양의 전국면이 함께 망하는 비운을 초래할 것이 분명하니 오늘 우리들
의 조선독립은 조선인으로 하여금 정당한 삶의 번영을 이루게 하는 동시에 일본
으로 하여금 그릇된 길로부터 나와서 동양을 지키는 중차대한 책임을 온전케 하
는 것이며, 중국으로 하여금 꿈에서도 버리지 못한 불안공포로부터 탈출케 하는
것이며, 또 동양평화로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평화, 인류행복에 필요한 단계가
되게 하는 것이라 이 어찌 구구한 감정상 문제이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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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아가는 도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간의 음울한 낡은 집에서 활발히 뛰
쳐나와 삼라만상과 더불어 흔쾌한 부활을 이룩하게 되는 도다. 백년 천년간의 조
상들의 영혼이 우리를 은연중에 지켜주고 전 세계의 기운이 우리를 밖에서부터
보호하나니 착수가 곧 성공이라. 다만 머리앞의 광명을 따라 약진할 따름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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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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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던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것이다. 그러므로써 일본의 제국주의 군국주의
세계제패는 일단은 중단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이후에 1945년 나치의 패망과
함께 일본의 패망이 불가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본회퍼와 안중근에게서
세계사의 광장에 나타난 세계심판을 있는 그대로 알아볼 수가 있었다. 이 작은
논고에서는 인간 앞에는 무기력하게 보이는 한 청년이었던 본회퍼에게서 그리고
안중근이라고 하는 마찬가기의 무기력하게 보였던 30세의 젊은이에게서 세계사의
향방이 바뀌게 된 것을 세계사의 광장에서 확인해 볼 수가 있었다. 그러한 세계
사의 정신이 1919년 3월 1일의 선언문에 소상히 기록으로 남겨진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3.1 정신은 세계사의 향방에 절대적으로 순응하고 있음
이 분명히 들어났다. 이는 다름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명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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